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시노 센이치 (문단 편집) === 한신으로 가서도 콩라인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kcc.zaq.ne.jp/hosino.jpg|width=100%]]}}}|| 2002년 당시 1987년 이래로 '''66566'''2[* 1992년 당시 성적. 사실 이것도 그 해 세리그 우승을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에 우승팀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성적은 69승 [[한신 타이거스/1992년/9월/11일|1무]] 61패로 우승팀 치고는 그리 좋은 성적도 아니었고 1위와 최하위 [[주니치 드래곤즈|주니치]]간의 게임차가 9.0게임밖에 나지 않았다.(당시 주니치 성적은 60승 70패) 1위 [[야쿠르트 스왈로즈|야쿠르트]]와 4위 [[히로시마 카프|히로시마]]와는 3.0경기차였고 히로시마조차도 66승64패의 성적으로 우승을 노릴 정도로 대 난전이었다. 이 해 [[한신 타이거스]]도 67승 2무 63패로 2위팀 치고는 승률이 높은 편도 아니었다. 그나마 그 2위도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하고 공동 2위였다.]'''[[4466566664|446656666]]'''이라는 [[비밀번호(스포츠)|비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 밑바닥을 찍~~다못해 내핵까지 파~~던 [[한신 타이거스]] 감독을 맡았다. 참고로 저 밑의 6666은 한신 타이거스 팀 최다 연속 꼴찌기록(4년 연속). 2001년 시즌이 끝나고 부임한 호시노 감독은 [[이마오카 마코토]], [[세키모토 켄타로]], [[카타오카 아츠시]], 후지모토 아츠시 등을 등용하며, 그 해 B클래스(리그 4~6위권) 탈출에 실패했지만 [[센트럴 리그]] 4위를 기록하며 부활의 가능성을 보였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노무라 카츠야]]의 ~~3년 연속 리그꼴찌 대신 남긴~~ 유산 덕택이라는 얘기가 있긴 했지만, [[히로시마 카프|히로시마]]의 [[가네모토 도모아키]], [[텍사스 레인저스]]를 떠난 [[이라부 히데키]] 등을 FA로 영입한 2003년에는 한신에 '''18년 만의 리그 우승을 안기며 일본시리즈에 진출한다.''' 그러나, 4년 전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 시절에 맞붙었던 팀인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때 감독도 [[오 사다하루]]. 이 항목을 정독해왔다면 알겠지만 '''호시노가 감독으로서 일본시리즈에 올랐다 하면 상대팀 감독이 죄다 교진 출신이었다.'''(...)][* 7차전 상대팀의 선발 투수는 [[와다 츠요시]]였고 한신에 8안타를 맞았으나 2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팀을 일본제일로 이끌었다. 와다는 그 해 퍼시픽리그 신인왕에 만장일치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다만, 암흑기를 끝내는 18년만의 리그 우승의 임팩트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인지, 호시노는 이 공로로 [[쇼리키 마쓰타로상]]을 수상한다. 리그 우승만으로 쇼리키상을 수상한 감독은 1979년 킨테츠를 파리그 우승으로 이끈 [[니시모토 유키오]] 이후 두 번째. 마침 [[1979년 일본시리즈|이 해 일본시리즈]]도 굉장한 명승부였다.] 이게 진짜 아까웠던 게 다이에에게 [[후쿠오카 돔]]에서의 1~2차전을 내준 후, [[한신 고시엔 구장|코시엔]]에서 내리 3연승을 하며 [[리버스 스윕]]을 할 뻔했으나 이후 [[후쿠오카 돔]]에서 또다시 6~7차전을 연달아 내주며 역관광당하고 말았다(...). ~~1년만 일찍 진출했어도!~~[* 즉, [[2009년 한국시리즈]]처럼 전부 홈팀이 승리한 시리즈였다.] 호시노는 그 해를 끝으로 건강상의 이유로 인해 [[오카다 아키노부]]에게 감독직을 넘겨주게 된다. 이 해 한신이 시즌 내내 1위를 달리며 18년만의 우승 가능성이 비치기 시작하자 미디어들이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한신과 호시노 감독을 따라 다녔고, 팬들이 1승 1패에 일희일비하는 낙차가 매우 컸다. 특히 리그 우승 [[매직넘버(스포츠)|매직넘버]]가 켜진 이후로는 팬들과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미디어들의 조급증이 극에 달해서 매일매일의 승패에 따라 '''간사이지역 전체의 분위기'''가 '''거의 [[조울증]]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꽤 여유있게 우승을 차지한 편[* 사실 여유있게 우승을 차지한 정도도 아니고, 적어도 세리그에선 압도적으로 강한 전력을 과시하며 우승했다. 당장 저 매직넘버도 전반기도 다 안 지난 '''7월 8일(49, 당시 세리그 최단)'''에 켜졌고, 우승 확정도 9월 15일에 했으며, 최종 승률 '''.630'''(2위 주니치와 '''14.5경기차''')으로 우승했다. 다만 8월에 죽음의 원정을 다니면서 그 기간에 4승 11패를 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는데, 그래봐야 고시엔에 돌아오자마자 도로 승률을 회복, 한때 17.5경기차까지 벌어졌던 승차가 14.5경기차 정도로 줄어든 정도에 그쳤으니 뭐...] 임에도 불구하고 선수단 전체가 우승을 확정짓기까지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오죽하면 철권으로 소문났고 남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를 혐오하는[* 불과 사망 한달 반 전에 본인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축하하는 공식 행사에 나왔는데 아무도 그의 병세를 눈치채지 못했고, 사망 3주일 전에 나고야 지역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본인의 주니치 시절을 회고하는 무려 한시간짜리 대담 프로그램을 소화할 정도였다. 참고로 이 때 진행자는 호시노의 주니치 감독 시절 중계방송을 주로 담당했던 고참 아나운서 [[쿠노 마코토]][* [[주니치 드래곤즈/응원가|타올라라 드래곤즈]]의 1988년, 1991년, 1993년 버전을 맡은 적이 있기에 주니치 팬들에겐 나름 네임드 있으신 분이다.]로, 호시노와의 교분도 무려 40년 가까이 되는 사람이었는데도 병색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평소보다 약간 수척해 보인다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70대에 접어들어 다들 나이가 들어서 그렇겠거니 하고 생각했을 정도. 호시노는 혼자 있을 때는 몰라도 사나이라면 남들 앞에서는 무조건 강한 모습을 보여야 된다는 것이 평생의 신조였던 사람이었다.] 호시노조차도 [[고혈압]]을 견디지 못해서 경기 도중에 자리를 떠서 응급조치를 받았으며, 우승이 결정된 후에 이어진 우승감독 인터뷰에서 아나운서가 소감을 물었을 때 첫마디도 "아~ 신도캇타(힘들었네)[* '신도캇타'는 힘들다를 의미하는 사투리 '신도이'의 과거형이다]"였을까. 이러한 점이 일본시리즈 패배와 시즌 후 호시노의 사임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sankei.com/wst1510250006-p2.jpg|width=100%]]}}}|| || {{{#000 '''2003년 센트럴리그 우승 확정 후 헹가레를 받는 호시노[* 이 헹가래는 12년간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한 여성 팬의 소원('호시노 감독의 헹가래를 보고 싶다')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https://www.ad-c.or.jp/campaign/search/index.php?id=430&keyword=%E9%AA%A8%E9%AB%84%E3%83%90%E3%83%B3%E3%82%AF&page=2&sort=businessyear_default|#]]]'''}}} || 호시노 사임 이후, 오카다 감독의 지휘 하에 한신은 2005년 또 다시 [[센트럴 리그]] 우승을 하여 [[일본시리즈]]에 올라가지만... '''[[2005년 일본시리즈|그 결과는 매우 끔찍했다(...)]]''' ~~그냥 한신 자체가 안 되는 팀.~~ 그 뒤에도 2008년에는 13경기차로 앞선 1위를 달리고 있다가 다 따라잡히고 리그 우승을 놓치질 않나, 2014년 [[와다 유타카]]의 지휘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리그 우승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도쿄돔]]에서 4연승으로 박살내고 [[2014년 일본시리즈|일본시리즈]]에 올라왔건만, 4차전 오승환의 끝내기 홈런 허용에 니시오카 츠요시가 5차전에서 대형사고를 치는 등, 1승 4패로 어이없게 일본시리즈 우승을 놓쳤다. 그리고 2005년 이후 한신이 다시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하기까지는 또 [[한신 타이거스/2023년|18년이 더 걸렸다.]][* 마침 23년 한신의 감독 또한 05년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오카다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